이소룡의 인생과 무도인생
○ 열강들에 이리저리 치어살던 암울했던 시대, 중국인에게 민족주의적 자긍심을 자극하는 내용들로,
영화 그 이상의 열광적인 반응을 얻어냈던 이소룡의 국적은 사실 미국이다. 홍콩의 유명 경극배우였던 아버지의 미국공연을 따라갔던 이소룡의 어머니가 도착 후에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, 본의 아니게
원정출산을 하게 된 격으로 이후에도 국적을 바꾸지 않았다.
○ 서양의 합리주의적 사고가 형식을 배제한 절권도 창시와 전수에 영향을 끼쳤다고도 볼 수 있으며 동,서양의 경계인이었던 본인의 입장이 늘 딜레마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가 있다.
○ Bruce란 이름은 미국에서 출생했을 때, 마땅한 영어 이름을 생각하지 못했던 부모님을 대신해
간호사가 즉석에서 지어준 이름으로 홍콩에 간 이후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다가 다시 미국으로
돌아온 후 사용하기 시작했다. 전설이 된 이름의 재미있는 탄생과정. 본명은 이진번.
○ 어린시절 부터 아역배우로 활동하며, 이때 예명인 이소룡이 만들어진다. 당시 여러가지 캐릭터들을
소화하며 연기의 기초를 다지게 되는데 이소룡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코를 훔치는 행동이나 거만한 얼굴로 상대에게 오라는 손을 까딱하며 까부는 제스츄어들은 아역시절 모두 만들어졌다.
○ 어린시절 '호랑이파'를 조직해, 싸움을 일삼던 이소룡은 반영 감정이 심하던 식민지 시절,
괜히 영국인 학교 앞에서 시비를 걸고 싸움을 하곤 했었다.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영국인 아이들에게
호랑이파는 자주 밀리곤 했으며 이소룡은 도망가면서까지도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.
호랑이파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뱃지나 마크 등을 만들어 옷에 부착하고 다녔다고 한다.
○ 친구의 소개로 영춘권에 입문하게 된 이소룡은 타고 난 재능과 열정 덕에 엽문의 눈에 띄게 된다.
허나, 중국인들에게만 전수된다던 영춘권의 원칙을 어기게 된 케이스가 바로 또 이소룡. 이소룡의
어머니는 독일계 혼혈이었던 이유로 다른 제자들의 불만의 대상이 되었다. 이소룡의 재능을 아낀
엽문을 이후 자기 아들 및 다른 사범들을 시켜 이소룡에게 따로 과외수업을 하게 된다.
○ 어린시절부터 과시욕과 허세가 강했던 이소룡은 남들의 주목을 받는것을 좋아했다. 좋게보면
타고난 배우의 끼라고도 할 수 있는데, 춤을 잘춰 여자들 좀 꼬셔보려고 차차차를 배워 대회에서
우승을 하기도 했으며 학창시절 '나에게 미소를 보여주기만 하면, 나와 잘 수 있는 영광을 주겠다'라
적힌 명함을 만들어 주위 여자애들에게 돌리곤 하였다. 성공여부는 미지수.
